본문 바로가기
카테고리 없음

5편. 협동과 이타성은 왜 존재하는가 — 이기적 유전자를 넘어서는 진화의 전략

by graywolf613 2025. 5. 28.

협동은 유전자의 이기심이 만든 가장 이타적인 전략일 수 있다.


이타성이라는 진화의 역설

 

이타적인 행동은 진화의 법칙과는 정면으로 충돌하는 듯 보인다. 타인을 위해 자신의 자원을 희생하거나, 심지어 생명을 내놓는 행위는 개인 생존을 중시하는 자연선택 이론과 어긋나기 때문이다. 하지만 《유전자 지배 사회》는 이러한 이타성이 오히려 유전자 생존에 유리한 전략일 수 있음을 밝힌다. 가장 대표적인 설명은 '혈연 선택 이론'이다. 내가 희생함으로써 유전자가 공유된 형제나 자식이 살아남는다면, 유전자의 관점에서는 오히려 효과적인 번식 전략이 된다. 인간뿐 아니라 곤충, 새, 심지어 박테리아에게서도 이타적 행위는 관찰된다. 생물은 결코 무조건적으로 착해서 남을 돕는 것이 아니라, 유전자의 확산이라는 더 큰 틀에서 계산된 행동을 하는 것이다. 이타성은 그래서 역설적으로 ‘이기적 유전자’의 또 다른 얼굴이다.


협동이 유리했던 인간의 진화 환경

 

인간은 다른 동물에 비해 더 복잡한 협동 시스템을 발달시켜 왔다. 초기 인류는 사냥, 채집, 육아, 주거 등 모든 생활을 소규모 집단에서 함께 해결해야 했기 때문에, 협동이 곧 생존의 조건이었다. 이 환경에서 이기적으로만 행동하는 개체는 집단에서 배제되었고, 오히려 남을 돕고 협력하는 개체가 더 오래 살아남았다. 이런 구조 속에서 공감 능력, 배려, 의사소통, 윤리의식 등이 강화된 것이다. 《유전자 지배 사회》는 이를 ‘상호성의 진화’라고 설명하며, 타인의 반응을 고려한 전략적 협동이 유전자의 명령에 따라 발전해왔음을 보여준다. 단순한 선행이 아니라, ‘내가 도우면 언젠가 그도 나를 도울 것’이라는 계산된 행동이 인간 사회를 구성했다. 이처럼 이타성은 사회적 지능과 연결되며, 인간의 사회화와 문명화에 핵심적인 역할을 해왔다. 결국 유전자는 협동을 통해 더 큰 성공 확률을 확보한 셈이다.


이타성과 문화의 상호작용

 

하지만 인간의 이타성은 단순한 유전적 프로그램 그 이상을 지닌다. 문화와 제도는 유전자의 영향을 넘어서 새로운 윤리적 구조를 만들어냈다. 대표적인 예가 헌혈, 장기 기증, 기부와 같은 행위이다. 이는 직접적인 보상이 없는 순수한 이타적 행동으로 보이지만, 그 밑바탕에는 문화적으로 학습된 도덕성과 사회적 인식이 작동한다. 책은 이 과정을 ‘문화 진화’라고 부르며, 유전자가 설계한 프로그램 위에 문화가 새로운 윤리 코드를 덧입혔다고 설명한다. 즉, 인간은 유전자의 지배를 받는 동시에, 문화를 통해 유전자의 한계를 넘어서기도 한다. 이는 인간이 단순한 생물학적 존재를 넘어서, 스스로를 규율하는 ‘도덕적 존재’가 되었다는 뜻이다. 이타성과 윤리는 유전자가 열어준 틀 안에서, 인간이 문화를 통해 창조해낸 또 다른 진화의 산물이다.


유전자에 저항하는 인간의 가능성

 

이타성과 협동이 유전자 전략이라면, 그 전략을 넘어설 수는 없을까? 책은 여기서 매우 흥미로운 가능성을 제시한다. 인간은 유전자의 명령을 인식하고, 때로는 그것에 저항할 수 있는 유일한 종이라는 것이다. 예를 들어, 양육 본능이 없는 유전자를 타고났다고 하더라도, 교육과 문화는 책임감 있는 부모를 만들어낼 수 있다. 반대로, 아무리 공격성을 지닌 유전자를 타고났다 하더라도, 법과 윤리는 그것을 통제할 수 있다. 이런 점에서 인간은 유전자의 로봇이 아니라, 유전자를 다루는 자율적 존재가 될 수 있다. 《유전자 지배 사회》는 인간이 유전자의 영향력 안에 있으면서도, 그 구조를 인식하고 변형해 나가는 존재라는 점을 강조한다. 그 순간, 우리는 생물학을 넘어서는 존재로 나아가게 된다.


공동체, 윤리, 그리고 새로운 사회

 

책은 협동과 이타성이 유전자와 문화의 복합작용임을 전제하며, 미래 사회의 방향을 제안한다. 경제적 이기심, 경쟁 중심의 사회를 넘어서, 공존과 연대를 기반으로 한 공동체의 중요성이 더욱 부각되고 있다. 코로나 팬데믹, 기후 위기, 세계적 분쟁은 모두 ‘개인 이득’만을 추구하는 사회의 한계를 드러냈다. 인간은 이제 생존을 위해 다시 ‘함께’ 살아야 한다. 책은 이때 유전자의 논리보다 윤리적 판단, 문화적 협동, 제도적 설계가 더 중요해질 것이라고 말한다. 유전자에 대한 이해는 결국 더 나은 윤리를 설계하기 위한 과학적 기초로 기능해야 한다. 협동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이며, 그 선택은 인간이 ‘유전자를 넘는 존재’임을 입증하는 첫걸음이 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