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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편. 혐오와 편견은 어디서 왔을까 — 유전자 관점에서 본 타인에 대한 배척 본능

by graywolf613 2025. 5. 28.

 

우리가 타인을 본능적으로 경계하는 것은, 유전자가 생존을 위해 설계한 오랜 전략일 수 있다.


혐오는 본능일까, 학습일까

 

타인을 향한 혐오와 배척은 인간 사회에서 가장 오래된 감정 중 하나다. 우리는 피부색, 말투, 종교, 성 정체성 등이 다르다는 이유로 낯선 이들을 멀리하거나 배척하는 경우가 많다. 이 책은 그런 감정의 기저에 ‘행동 면역(behavioral immune system)’이라는 유전적 기제가 작동하고 있다고 설명한다. 행동 면역이란 감염의 가능성이 있는 대상을 무의식적으로 피하게 만드는 생존 전략이다. 수천 년 전 작은 공동체에서 살아가던 인간은 낯선 집단과의 접촉을 통해 질병을 옮거나 죽음에 이를 수 있었기 때문에, ‘낯섦 = 위험’이라는 등식이 생존에 유리했다. 이것이 진화하면서 지금의 현대인에게도 편도체를 통한 반사적 혐오 반응이 남아 있는 것이다. 혐오는 단지 사회문화적으로 학습된 것이 아니라, 유전자에 각인된 생존 전략이라는 점에서 근본적이다. 이러한 해석은 혐오와 편견을 정당화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이해하고 극복할 방법을 찾기 위한 첫걸음이다.


뇌는 타인을 어떻게 인식하는가

 

혐오가 작동할 때, 뇌는 사람을 사람으로 인식하지 않는다. 감정을 관장하는 편도체가 활성화되고, 동시에 타인을 인간으로 바라보게 하는 뇌 영역은 비활성화된다. 이 현상은 타인을 뱀이나 배설물처럼 위험한 대상으로 분류하게 만들어, 방어적인 공격성을 유도한다. 그래서 사람을 향한 혐오감이 생겼을 때, 그 대상은 더 이상 나와 같은 인격체가 아닌 ‘배제해야 할 것’으로 전락한다. 책에서 소개된 실험에서는, 우리가 혐오감을 느낄 때 뇌가 동일한 경로를 통해 동물이나 사물에 반응할 때와 비슷한 신호를 보낸다고 한다. 이것이 반복되면 편견과 고정관념이 강화되고, 사회적 차별로 이어질 가능성이 커진다. 유전자의 명령에 따라 작동하는 뇌는 빠르고 효율적인 분류를 통해 에너지를 아끼고자 하며, 그 결과 외모나 언어만으로 타인을 판단하게 된다. 우리는 이렇게 무의식적 작동 방식을 이해해야만, 혐오를 줄이기 위한 새로운 사회적 규범을 설계할 수 있다.


공격성과 혐오, 유전자의 명령

 

책에서는 혐오가 단순한 회피를 넘어서 공격성으로 확장될 수 있는 경로도 설명한다. 편도체가 자극을 받으면 교감신경이 활성화되며, ‘도망갈 것인가, 싸울 것인가’의 반응이 자동적으로 결정된다. 뇌가 특정 집단을 ‘위험 요소’로 분류하면, 물리적 공격이나 구조적 차별을 정당화하려는 본능이 작동한다. 이때 타인을 사람으로 인식하지 않는 ‘비인격화’는 죄책감을 줄이는 장치로 작용한다. 우리는 이것을 역사 속에서 반복적으로 보아왔다. 인종 학살, 전쟁, 성소수자에 대한 폭력은 모두 이런 심리적 구조와 깊은 관련이 있다. 《유전자 지배 사회》는 이러한 메커니즘을 통해 인간의 잔혹함을 과학적으로 설명함으로써, 반대로 윤리적 선택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유전자가 우리를 그렇게 만들었다면, 문명은 그것을 어떻게 다스릴 것인가가 인간성의 시험이다.


정치와 혐오, 위험한 결합

 

가장 무서운 것은 이 유전적 혐오 본능이 정치적으로 악용될 때다. 반응적 공격성은 통제가 어렵지만, 정치적 선동은 전략적으로 사람들의 편도체를 자극한다. 역사적으로 지역주의, 인종차별, 반공주의 등이 정치 도구로 사용되면서, 특정 집단에 대한 혐오와 배제가 체계적으로 강화되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나 과거 한국의 지역감정 조장 등은, 유전자의 본능을 정치가 자극하여 사회적 분열을 만든 사례로 볼 수 있다. 이 책은 정치란 본래 '주도적 공격성'의 산물이며, 강한 알파 개체에 대항하기 위해 베타 개체들이 연합하면서 생긴 현상이라고 본다. 그렇다면 정치의 올바른 역할은 유전적 공격성과 혐오를 부추기기보다, 그것을 통제하고 제도화하는 데 있다. 유전자가 그렇게 하도록 만든다 하더라도, 인간은 그 본능에 휘둘리지 않고 윤리적 판단을 내릴 수 있어야 한다. 정치는 혐오를 부추기는 도구가 아닌, 공존을 설계하는 지혜여야 한다.


인간 본성의 양면성과 극복 가능성

 

최정균 교수는 인간의 혐오 본능을 설명하면서도, 동시에 그 반대의 감정인 연대와 공감 또한 유전자의 산물일 수 있다고 말한다. 역사적으로 잔인한 행위를 멈추게 한 것은, 아이들의 눈물이나 소설 속 이야기, 사진 한 장이었다. 타인의 고통에 공감하고 함께 분노하며 변화시키는 힘은, 뇌 속 또 다른 회로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는 도덕성 또한 진화의 산물이며, 인간 사회가 폭력을 멈추고 협동하는 방식으로 진화해왔음을 시사한다. 우리가 타인을 적으로 느끼는 유전자가 있다면, 타인을 동료로 느끼는 유전자도 있다는 뜻이다. 결국 인간의 본성은 단일하지 않으며, 혐오와 공감은 공존한다. 이 책은 인간이 선택의 여지를 가진 존재임을 강조한다. 유전자를 이해하고 그것을 넘어서기 위한 도전, 바로 그것이 ‘인간성’이라는 메시지를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