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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전자 지배 사회》 깊이 읽기: 과학으로 인간을 해석한다_1

by graywolf613 2025. 5. 28.

1편. 사랑은 유전자에게 속았다 — 감정, 번식, 그리고 진화의 이면

 

우리가 ‘사랑’이라 부르는 감정은, 유전자의 생존 전략일 수 있다.


감정의 기원은 어디인가

사랑이라는 감정은 오랫동안 인문학과 예술의 주요 주제로 다뤄졌지만, 《유전자 지배 사회》는 이 감정을 과학적으로 분석한다. 최정균 교수는 유전자의 시각에서 사랑을 본다면, 그것은 인간의 번식을 돕기 위한 생물학적 메커니즘이라 말한다. 우리가 누군가에게 끌리고 정서적 유대를 느끼는 이유는 결국 유전자의 복제를 위한 전략일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주장은 인간의 자율성과 감정을 중시하는 기존 인문학적 관점과 충돌하며 독자에게 새로운 질문을 던진다. 사랑이란 감정이 자율적 의지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유전자에 의해 유도된 것이라면, 우리는 과연 누구의 삶을 살고 있는가. 책은 이러한 의문을 과학적 근거와 함께 풀어낸다. 도파민, 옥시토신 같은 호르몬이 사랑의 감정을 유도한다는 사실은 이미 알려져 있었지만, 이를 유전자의 번식 전략과 연결 지은 설명은 신선하고 도발적이다. 감정의 정체를 유전자 관점에서 바라보는 이 책의 접근은, 독자에게 사랑의 본질을 새롭게 돌아보게 만든다.


모성애와 유전자의 갈등

《유전자 지배 사회》는 임신이라는 현상도 단순한 사랑의 연장이 아니라 생존 경쟁의 장으로 본다. 임신 중 발생하는 임신성 당뇨는 단순한 질병이 아니라 태아와 산모 간의 자원 확보 싸움이라는 점이 흥미롭다. 태아는 어머니의 에너지를 자신에게 집중시키기 위해 인슐린 작용을 방해하는 물질을 분비한다. 반면 산모의 몸은 더 많은 인슐린을 생산하며 저항한다. 이 생리학적 갈등은 생명의 탄생이 결코 평화로운 과정만은 아님을 보여준다. 흥미로운 점은 이 갈등이 태아의 유전자 중 아버지에게서 물려받은 부분에서 기원한다는 사실이다. 아버지 쪽 유전자는 자신과 혈연 관계가 없는 미래 형제들을 배제하고 현재의 생존 확률을 높이려 한다. 이런 설명은 부모 자식 관계를 감정적으로만 보던 시선을 해체하고, 유전자의 시선에서 가족을 다시 바라보게 만든다.


귀여움의 전략, 생존의 도구

영유아의 외모가 귀엽다고 느껴지는 것도 유전자의 전략이라고 책은 설명한다. 인간 아기는 성장 속도가 느리고 생존률이 낮기 때문에 돌봄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이때 부모의 보호 본능을 유도하기 위해 아기들은 눈이 크고 통통한 외모, 높은 음조의 울음소리를 진화적으로 발전시켜 왔다. 우리가 아기를 사랑스럽다고 느끼는 것은 순수한 감정이라기보다는 유전적으로 설계된 반응일 가능성이 높다. 이처럼 유전자는 감정뿐 아니라 감각적 반응까지도 통제할 수 있는 존재다. 《유전자 지배 사회》는 이러한 사례를 통해 유전자가 인간의 감정적 구조에 얼마나 깊숙이 관여하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인간이 자신을 자율적 존재로 인식하는 한편, 유전자의 명령을 따르고 있다는 이중성은 독자로 하여금 자아에 대한 인식을 근본부터 다시 생각하게 만든다. 귀여움조차 생존 전략이란 설명은 과학이 감정의 낭만을 해체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다.


감정과 자아, 그리고 유전자의 실체

우리는 사랑을 ‘나의 감정’이라고 믿는다. 그러나 《유전자 지배 사회》는 그 감정조차 외부에서 ‘주입된’ 것일 수 있다고 말한다. 유전자는 생존과 번식을 최우선으로 하기 때문에, 감정을 그 목표에 부합하는 방향으로 조정한다. 이는 감정이 자유로운 선택의 결과라는 통념에 근본적인 의문을 던진다. 그렇다고 이 책이 인간을 기계처럼 보자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인간이 ‘왜 그렇게 행동했는가’를 더 깊이 이해하기 위한 해석의 도구로 유전자를 활용하자고 제안한다. 자아를 구성하는 감정과 선택들이 모두 유전자와 뇌 화학물질의 상호작용으로 설명될 수 있다면, 인간의 자율성은 어디서 출발해야 하는가. 이 책은 그 질문을 던지되, 명확한 해답을 주지는 않는다. 그 대신 독자가 스스로 자신의 감정과 행동을 더 깊이 성찰하도록 이끈다.